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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격리일기13

자가격리일기 13. 4월 17일 금요일 (비포 선라이즈, 톨스토이 단편선) 오늘의 영화: 비포 선라이즈 무려 1996년 작품이다. 두 남녀가 기차에서 우연히 만나 비엔나에 내린 후 날이 밝아 헤어질 때까지 한나절동안 일어난 일을 100분에 아름답게 담았다. 25년 전 영화인데도 전혀 촌스럽거나 유치하지 않다. 특히 줄리 델핀이 연기한 여자주인공 셀린의 행동과 대사는 2020년에 듣는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아름다운 비엔나의 밤을 배경으로 두 주인공의 대화가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진행된다. 두 주인공의 대사는 청춘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담고 있으면서도 한 줄 한 줄 적어서 기록하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룻 밤 사이에 운명적인 사랑이 되었지만 진솔한 대화를 따라가느라 전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밤새 서로 쿨한 척하다가 결국 헤어지는 순간에 재회를 약속하는 모습.. 2020. 4. 18.
자가격리일기 12. 4월 16일 목요일 (오션스 일레븐, 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 줌을 처음 써봤다. 인도네시아의 확진자 숫자는 벌써 5000명을 훌쩍 넘어가고 있다. 의심스러운 것은 하루이 200명씩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검진을 할 수 있는 양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인도네시아 당국은 그렇게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강도높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계속됨에 따라서 화상회의, 화상업무 진행이 많아졌는데 그래서 나는 인도네시아 법인 업무를 할 때만 줌, 마이크로소프트 팀즈 등의 화상업무 프로그램을 쓰게 된다. 이렇게 하다보면 앞서 말한대로 "어 원격으로 해도 무리없이 잘 진행되네?" 라는 의식이 사람들에게 생길 테고, 점차 사회의 모양을 바꿔나갈 것이라는 분석에 나는 이의가 없다. 회사 업무 후엔 월스트리트 어학원 화상 EC를 받았다. 강남센터의 선생님이.. 2020. 4. 16.
자가격리일기 11. 4월 15일 수요일 (브래이킹 배드, 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 노트) 4월 15일 총선일이자 11일차 격리일이다. 오늘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퍼져 인류가 위협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놀라운 의료수준과 행정력으로 대응중인 대한민국에 감사하는 내용을 좀 적고싶다. 아침에 일어나면 자가격리진단 어플리케이션으로 현재 상황을 입력한다. 대표 증상이라고 할 수 있는 고열, 기침, 인후통 을 체크하게 된다. 오전 중에 전화 한통이 온다. 구청에서 나를 담당하시는 공무원께서 전화를 주신다. 두 분인 것 같은데 주말이나 오늘같은 선거일에도 빠짐없이 전화를 하신다. 증상체크를 하시고 외출 여부를 검사하신다. 올바른 시민이라면 밖에 안나가는 것이 맞으므로 나도 당연히 계속 격리를 지키고 있다. 오후 1시가 되면 어플리케이션을 켜서 다시 같은 증상체크를 한다. 구청 주무관님은 몇 시간 내로.. 2020. 4. 16.
자가격리일기 10. 4월 14일 화요일 (헤일, 시저!, 톨스토이 단편선) 자가격리 10일차, 점점 다짐들이 무너지고 있다. 일을 하지 않으면 늙는다는 말이 이해되어간다. 오늘은 자택근무도 설렁설렁했는데 이렇게 일하는 것은 나와 맞지 않는가보다. 차라리 바짝 일하고 편하게 쉬는 것이 내타입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인도네시아에 있는 동안 정지해놓았던 영어학원이 자동으로 재개 되어서 목요일에 온라인 수업을 하기로 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만든 여러가지 사회 현상중에 주목할 만한 것으로 사람들의 관성을 깼다는 점을 들고 싶다. 이전까지도 광범위한 온라인 수업, 온라인 미팅이 가능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대면을 선호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비대면이 강요된 사회에서 직접 비대면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 이것이 이 질병이 불러온 역사의 변곡점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요새 점.. 2020. 4. 14.
자가격리일기 09. 4월 13일 월요일 (브레이킹 배드,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한주의 시작 월요일, 사실 자가격리의 일상은 그렇게 다이내믹하지 못하다.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격리한다는 것이 그래도 큰 축복이라고 생각해서 문 너머를 통해서라도 시간을 함께 쓰고 싶다. 안방에 갇혀 있는 생활에는 요리의 자유, 일조의 자유, 조망의 자유 등 많은 것이 없다. 그래도 더 큰 행복이 분명 함께하고 있다. 최근에 읽은 어느 책에서 당신이 고등학교를 졸업한다면 이미 부모님과 보내는 시간의 80%를 사용한 것이라고 하더라. 물론 미국의 이야기라서 우리네 사회와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한국 사회도 점점 이와 같아지지 않을까 싶다. 시간이 아깝다, 시간이 없다, 고 하는데 도대체 그 시간을 아껴서 무엇을 하겠다고 하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현명한 사람들은 현재에 집중하라는지, 왜 지금 가지고.. 2020. 4. 13.
자가격리일기 08. 4월 12일 일요일(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오늘의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러닝타임 2시간 30분의 대작, 역시 주말에 보려고 아껴두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장고: 분노의 추적자]를 인상적으로 보고 나서 얼마 안되서 바로 다시 접한 동 감독의 최신작이다. 긴 러닝타임이지만 어제 보았던 [아이리시맨]과는 시간이 흐르는 감이 완전히 달랐다. 극의 전개가 빠른데다가 도저히 어떤 이야기인지 궁금증을 가지면서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음? 도대체 충격적인 살인사건과 그 해결은 언제 나오려는거지? 하면서 영상 스크롤을 확인해보니 거의 영화 막바지였다. 영화는 그 막바지에 타란티노 감독의 시그니쳐인 핏빛 액션을 집중해 놓았고 카타르시스 후에 영화는 불현듯 막을 내려버린다. 조승연 작가님의 유튜브 채널에서 이 영화의 역사적 배경을 자세히 설.. 2020. 4. 12.
자가격리일기 07. 4월 11일 토요일 (아이리시맨, 페스트) 자가격리를 시작한지 일주일을 넘겼다! 기간이 주어진 생활을 하다보면 결국 우리의 삶도 그 기간들의 확장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사용하였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면 손쉽게 우리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같은 질문을 던질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그래서 죽음이 그림자 속에 있어 잘 보이지 않는 상태라면 시간을 쪼개는 것은 항상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또 하나 또다시 확인한 교훈은, 주말을 빠르게 보내려면 늦잠을 자면 된다는 것이다. 이제 방구석 생활에 어느정도 적응을 해서 공허한 낮시간을 보냈다는 생각도 들지만, 무엇보다 늦잠을 자버렸더니 오전이 없어졌다. 하기야 워낙 대하영화(이런 표현이 있나..?)를 관람해서 시간이 금방 가버렸으려나. 오늘의 영화: 아이리시.. 2020. 4. 12.
자가격리일기 06. 4월 10일 금요일 (아메리칸 셰프, 페스트) 자택근무로 금요일까지 여차저차 왔다. 내일은 마음껏 빈둥댈 자유가 주어지는 주말이다! 작년 주말은 주로 놀러가고, 약속잡아서 사람들 만나고 하느라 집에서 박혀 보낸 적이 거의 없었다. 작년만 그럴까, 자카르타로 떠나기 전 나의 주말에서 집이 차지하는 비율은 잠이 차지하는 비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는 사람 없는 자카르타에서의 생활과, 돌아와서 2주간의 자가격리가 나에게 '집에서 보내는 생활'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여행의 즐거움은 단순히 떠나는 데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돌아오는 길, 그 길이 주는 즐거움과 일상으로 돌아오고 나서 떠올리는 행복감. 나에게 여행은 그 모든 과정을 다 포괄한다. 6개월간의 긴 여행(이라고 쓰고 출장이라고 읽는)을 다녀와서 집에 붙어있는 2주는 그래서 나쁘지 않다. 비록.. 2020. 4. 10.
자가격리일기 05. 4월 9일 목요일 (무드 인디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의 영화: 무드 인디고 Mood Indigo 마냥 동화같은 영화인줄 알고 봤다가, 씁쓸함에 뇌가 정지하는 영화였다. 내용만 놓고 보면 아주 특별할 것은 없다. 다만 영화의 크고 작은 장치들이 하나같이 꿈같다. 어린아이들의 상상이나 꿈은 사실 논리적이지 않고 말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 이 영화는 그런 방식으로 상식과 논리를 부수어버린다.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도 안되는 장치들을 자자연스럽게 등장시켜서 관객으로 하여금 등장인물들의 상황과 감정을 온전히 느끼도록 한다. 사진으로 그림을 만드는 느낌, 콜라주를 영화로 만들어 낸 느낌이다. 영화에서는 색을 노골적인 표현 장치로 사용하였다. 콜랭이 클로에를 만나 데이트를 할 때까지는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컬러풀한 파리의 모습이 보여진다. 신.. 2020. 4. 9.
자가격리일기 04. 4월 8일 수요일 Day 5. (빅뱅이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살아있는 유기체가 그렇고 과학에서 말하는 한 시스템이 그렇듯이 입력이 있어야 출력이 있다는 것. 글쓰기도 그렇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다만 '나' 라는 작가적 함수가 어떤 글을 출력하는데에 있어서 입력민감도가 얼마냐인 것이 소재나 현상을 포착하는 능력일 것이다. 많은 천재적 작가들은 이것을 영감이라고 했다. 나에게는 아직 입력을 몇배 키워서 출력을 과하게 뱉어낼 작가적 생산성이 부족한 것 같다. 오늘은 왠지 지난 4일간의 다짐과 노력이 싫어졌다. 몸과 마음이 그놈의 항상성을 지키고자, 변화를 막고 서있었다. 일기를 쓰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영화를 매일 보는 것조차 마치 의무감과 짐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오늘은 영화를 안봤다. 그것만으로도 꽤 신선한 변화가 느껴져서(나는 참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2020. 4. 8.
자가격리일기 03. 4월 7일 화요일, Day 4 (빅 피쉬, 타이탄의 도구들) 자가격리 4일째. 아직 열흘이 더 남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자가격리 하면서 마냥 쉬면 또 마냥 즐거울 것 같은데 자택근무를 하려니 고역이다. 점심시간에 해당하는 시간에 [타이탄의 도구들]을 다 읽었다. 출근하게 되었을 때도 점심시간 남는 시간이 있으면 꼭꼭 독서를 해야지. 들으면 어떤 장소나 시간이 떠오르는 음악이 있다. 올해 초 독서를 본격적으로 막 시작했을 때 읽은 [그리스인 조르바]를 넘는 책은 아직 없다. 내가 아직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운 책들도 있고, 반대로 책 자체의 수준이 그를 못넘는 책들도 있을 것이다. 전자는 나를 신장시켜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고, 후자는 마이크로에서 매크로를 찾는 느낌으로 대하면 배우지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 오늘은 명상도 시간을 지켜서 했지만 .. 2020. 4. 7.
자가격리일기 02. 4월 6일, Day 3. (브이포벤데타, 타이탄의 도구들) 자가격리 후 처음 맞는 평일. 본격적으로 재택근무를 시작하는 날이다. 재택을 하면서 최대한 일안하고 꿀을 빨려는 생각이 당연하게도 있었다. 그런데 하루 그렇게 보내고 나니 안그래도 혼자 있는 방에서 축 쳐지는 분위기가 더 침체되는 것이다. 차라리 열심히 일하고 쉴때 확실히 쉴 수 있는 것이 재택근무의 장점이 아닐까 싶다. (일 시작할때 즈음과 끝나고 나서 즈음 한번씩 전화와서 일 확인 하시는 본사 대선배님들 한테 변명하기도 싫고) 오늘은 일어나자마자 명상을 해보았다. [타이탄의 도구들]에서 소개된 명상 앱 'Calm'을 써 봤다. 무료 버전의 기능은 아무래도 한정적이지만 단순히 시간만을 체크해두고 명상을 하기에는 충분하다고 본다. 더군다나 디폴트로 깔리는 새소리와 졸졸졸 시냇물소리가 마음을 가라앉힌다. .. 2020. 4. 6.
자가격리일기 01. 2020년 4월 5일, Day 2. (장고 분노의 추적자, 타이탄의 도구들) 전날에 늦게 잠이 들어서 오후 10시가 다되어 일어났다. 이것이 주말의 삶이지 라고 잠시 생각했다가, 이번 자가격리 기간을 내적으로 성장시키는 기간으로 삼겠다는 나의 다짐이 생각났다. 아직 3일이 지나지 않아 의지가 유효하다. 성북구 보건소로부터 문자가 와있다. 귀하의 검사결과는... (잠깐 무서웠다.) 음성입니다!! 역시 그럴줄 알았다는 안도와 기쁨이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문자가 오전 8시에 도착했다는 것은 일요일 아침에도 이 업무를 하신다는 뜻이었다. 공무원, 의료진 여러분에게 다시한번 너무나도 감사드린다. 그럼에도 나는 자가격리를 유지하기로 했다. 다름아니라 정말 훌륭한 시간으로 채워나가고 싶다. 보고싶은 영화, 읽고 싶은 책이 많다. 글도 자주 쓰고 사진 작업도 계속하려고 한다. 티스토리가 있.. 2020.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