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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격리일기 2020

자가격리일기 01. 2020년 4월 5일, Day 2. (장고 분노의 추적자, 타이탄의 도구들)

by EHhyun 2020. 4. 5.

2018, 샌프란시스코

전날에 늦게 잠이 들어서 오후 10시가 다되어 일어났다. 이것이 주말의 삶이지 라고 잠시 생각했다가, 이번 자가격리 기간을 내적으로 성장시키는 기간으로 삼겠다는 나의 다짐이 생각났다. 아직 3일이 지나지 않아 의지가 유효하다.

성북구 보건소로부터 문자가 와있다. 귀하의 검사결과는... (잠깐 무서웠다.) 음성입니다!! 역시 그럴줄 알았다는 안도와 기쁨이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문자가 오전 8시에 도착했다는 것은 일요일 아침에도 이 업무를 하신다는 뜻이었다. 공무원, 의료진 여러분에게 다시한번 너무나도 감사드린다.

그럼에도 나는 자가격리를 유지하기로 했다. 다름아니라 정말 훌륭한 시간으로 채워나가고 싶다. 보고싶은 영화, 읽고 싶은 책이 많다. 글도 자주 쓰고 사진 작업도 계속하려고 한다. 티스토리가 있어서 다행이다. 외딴 곳에 문을 잠그지 않는 작은 살롱을 열어놓은 기분이다. 아무도 오지 않더라도 가꾸어 나가고 있다는 것, 내가 열어놓았다는 것이 나의 글을 편안함과 긴장감 사이에 두게 한다.

오늘의 영화: 장고 분노의 추적자
넷플릭스에 찜한 영화들을 하나하나 킬해 나갈 것이다. 하하. 그 첫 번째 영화는 장고Django, 유튜브에서 알쓸신잡 클립을 봤는데 유시민 선생님이 (계속 바뀌는) 그의 인생 영화 중 하나로 꼽으셔서 바로 고르게 되었다. (줄거리는 생략하고,)

영화를 가만히 보면 인종차별에 대한 내용이 아주 많이 다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이것이 영화의 주요 소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종차별은 등장 인물들이 영화 내에서 특정 행동을 하게 만드는 유인이다. 즉 배경과 상황을 제공한다. 마치 봉준호 감독 영화에서 표면적인 비판 대상은 그저 상황일 뿐인 것과 비슷하다. (사실 영화에 대해서는 아주 짧고 얕은 식견만 가지고 있지만 나름대로 분석을 따라해보는 것이 나의 영화를 감상하는 능력을 키워줄 것이라고 믿는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이 영화가 인종차별 자체를 강하게 비판하느냐를 묻는다면 고개가 갸우뚱 해진다. 장고는 흑인이지만 흑인 동족과 연합해서 백인 지주를 무찌르고자 하는 마음은 추호에 없다. 악역인 캘빈 캔디는 무식해서인지 흑인 집사 스티븐보다도 장고에게 관대하다.

전형적인 캐릭터가 없다는 것이 영화를 매력적으로 만든다. 캐릭터들이 매력적인 영화는 항상 옮다. 다른 캐릭터를 제치고 내 인상에 남은 두 사람은 크리스토프 발츠가 맡은 닥터 킹 슐츠, 사무엘 L 잭슨이 맡은 집사 스티븐이다. 킹 슐츠는 목표를 달성했음에도 정의에 못이겨 난장판을 만들고 만다. 집사 스티븐은 흑인이지만 백인보다 악랄하게 흑인 노예들을 대한다. 타란티노 감독이 펼쳐놓는 인간상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영화는 세상을 이해하는데 가장 강력한 도구라는 말이 있다. 다양한 장르영화를 보면 단순한 오락성 이상의 그 쾌감이 있는 것이다. OST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오늘의 책: 타이탄의 도구들
시작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책이 있을까. 읽다보면 더 많은 책들이 고파지는 책들이 있다. [타이탄의 도구들]에서 세계의 타이탄들이 추천해주는 책들은 빨리 책장을 넘겨서 넘어가고 싶은 책들이다. 아직 3분의 1정도 밖에 읽지 못했지만 눈꺼풀이 허락하는 한 몇시간이고 읽고 싶다.

아직 제대로 격리된 것은 첫 날이라서 할만하다. 다만 햇빛이 안들어오는 것이 참.. 슬프다. 비타민 D 알약 챙겨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