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가격리일기 2020

자가격리일기 05. 4월 9일 목요일 (무드 인디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y EHhyun 2020. 4. 9.

 

오늘의 영화: 무드 인디고 Mood Indigo
마냥 동화같은 영화인줄 알고 봤다가, 씁쓸함에 뇌가 정지하는 영화였다. 내용만 놓고 보면 아주 특별할 것은 없다. 다만 영화의 크고 작은 장치들이 하나같이 꿈같다. 어린아이들의 상상이나 꿈은 사실 논리적이지 않고 말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 이 영화는 그런 방식으로 상식과 논리를 부수어버린다.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도 안되는 장치들을 자자연스럽게 등장시켜서 관객으로 하여금 등장인물들의 상황과 감정을 온전히 느끼도록 한다. 사진으로 그림을 만드는 느낌, 콜라주를 영화로 만들어 낸 느낌이다.

영화에서는 색을 노골적인 표현 장치로 사용하였다. 콜랭이 클로에를 만나 데이트를 할 때까지는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컬러풀한 파리의 모습이 보여진다. 신혼여행을 떠나고 클로에가 병을 얻은 겨울이 되면서 점점 색채가 없어지더니, 종국의 비극적인 몇 분은 아예 흑백영화가 되어버린다. 동화적인 장치들도 영화 초반부에는 정신없이 등장하더니 후반부의 차가운 현실에서 동화적 상상은 오히려 비극을 강조해버린다.

[이터널 선샤인]과는 결이 다르다. [이터널 선샤인]에서도 동화적 장치들이 등장인물의 정서 묘사를 위해, 관객의 시각적 즐거움을 위해 자주 쓰였지만 [무드 인디고]에서는 한층 말이 안되는 상상들이 화면에서 구현된다. 

오늘의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두고두고 읽어야 할 책임에 분명하다. 잘 이해가 되는 부분조차 여러번 곱씹게 된다. 아마 시간이 흐르고 더 많은 식견이 쌓인다면 지금 이해하는 내용이 부끄러워지겠지. 성장은 반드시 부끄러움을 수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명한 부분, 낙타, 사자, 어린아이의 비유는 앞부분에 있어서 지나갔다. 영화 [무드 인디고]를 보고 나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또 생각났다. (자꾸 일상 이곳저곳에 투영되는 것이 니체의 마력인가보다.) 미셸 공드리는 영화적으로 사자의 단계를 넘어선 것이 아닐까 싶다. 논리와 상식을 초극하고 자신의 상상을, 자신의 표현대로 영화로 만들었다.

자가격리가 벌써 6일차다. 한 계단을 올라왔고 그 위에서 익숙해져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