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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격리일기 2020

자가격리일기 02. 4월 6일, Day 3. (브이포벤데타, 타이탄의 도구들)

by EHhyun 2020. 4. 6.

2018, 서울

자가격리 후 처음 맞는 평일. 본격적으로 재택근무를 시작하는 날이다. 재택을 하면서 최대한 일안하고 꿀을 빨려는 생각이 당연하게도 있었다. 그런데 하루 그렇게 보내고 나니 안그래도 혼자 있는 방에서 축 쳐지는 분위기가 더 침체되는 것이다. 차라리 열심히 일하고 쉴때 확실히 쉴 수 있는 것이 재택근무의 장점이 아닐까 싶다. (일 시작할때 즈음과 끝나고 나서 즈음 한번씩 전화와서 일 확인 하시는 본사 대선배님들 한테 변명하기도 싫고)

오늘은 일어나자마자 명상을 해보았다. [타이탄의 도구들]에서 소개된 명상 앱 'Calm'을 써 봤다. 무료 버전의 기능은 아무래도 한정적이지만 단순히 시간만을 체크해두고 명상을 하기에는 충분하다고 본다. 더군다나 디폴트로 깔리는 새소리와 졸졸졸 시냇물소리가 마음을 가라앉힌다. 교토 교환학생을 할 때 도후쿠지 아침명상에 참여했던 경험이 살아났다. 넓고 고요한, 수백년도 더 된 선방이 생각났다. 스님과 동자승과 파란눈의 외국인과 내가 함께 눈을 감고 느꼈던 그 시간이 사라지는 순간이 떠올랐다. 내일도 명상을 계속할 생각이다. 격리 생활에서 나를 건강하게 지켜주는 것은 10분 명상과 30분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그 한 시간 안되는 시간이 24시간 방안에 사는 나를 지켜주고 있다.

오늘의 영화: 브이 포 벤데타 V for Vendetta
자카르타에서부터 보고 싶었지만 자카르타에서 보는 넷플릭스는 한국어 자막이 없어서..! 그리고 주인공 브이가 말이 참 멋있는데 그의 빠르고 멋진 영국식 발음을 나는 다 알아듣기 어려워서 미루어둔 영화다. 우리나라에서는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 해야 한다"라는 대사로 유명해졌다. 대통령을 탄핵시켰던 국민적 움직임이 있었을 때 그를 상징하는 클립으로 본 적이 있다. 내가 느낀 영화 전반의 대립 구도는 다양성과 통일성 사이의 대립이다. 영화 내의 영국 정부는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을 국가의 적으로 내세운다. 마치 히틀러의 나치를 보는 것 같은 영화 속 정부와 당은 이런 국가의 적을 이용해서 사회의 불안을 직접 만들고 그를 빌미로 공포 정치를 시행한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에서 등장하는 '전염병'의 존재다. 학교와 상수도, 지하철에 풀어서 총 8만명을 죽인 그 질병은 사실 정부가 생화학 무기를 빌미로 만들어낸 인공의 병이었다. '이 시국'에 갇혀 지내는 입장에서 이렇게 치명적인 신종 전염병이 등장하는 영화를 만나니 감회가 남다르다. 주인공 브이의 캐릭터도 매력적이고 짧게 나오는 액션도 경쾌해서 재미있게 봤다. 메시지는 가볍지만은 않다. 소수자들이여 단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