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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격리일기 2020

자가격리일기 08. 4월 12일 일요일(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by EHhyun 2020. 4. 12.

로스엔젤레스, 2018

오늘의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러닝타임 2시간 30분의 대작, 역시 주말에 보려고 아껴두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장고: 분노의 추적자]를 인상적으로 보고 나서 얼마 안되서 바로 다시 접한 동 감독의 최신작이다. 긴 러닝타임이지만 어제 보았던 [아이리시맨]과는 시간이 흐르는 감이 완전히 달랐다. 극의 전개가 빠른데다가 도저히 어떤 이야기인지 궁금증을 가지면서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음? 도대체 충격적인 살인사건과 그 해결은 언제 나오려는거지? 하면서 영상 스크롤을 확인해보니 거의 영화 막바지였다. 영화는 그 막바지에 타란티노 감독의 시그니쳐인 핏빛 액션을 집중해 놓았고 카타르시스 후에 영화는 불현듯 막을 내려버린다. 조승연 작가님의 유튜브 채널에서 이 영화의 역사적 배경을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나는 일부러 영화를 먼저 보았지만 유튜브 영상을 먼저 보았으면 훨씬 이해도가 높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뒤늦게 영상을 찾아보니 그제서야 영화에서 강조한 인물들, 장치들이 이해가 되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할리우드 영화계에 헌정한 영화라는 평이 딱 맞았다. 끔찍한 사건을 50년의 세월을 초월해 추모함과 더불어 그 세대의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지금의 헐리우드에도 따뜻한 응원의 시선을 던진다. 비록 배경 설명 영상을 나중에 보아서 영화를 보는 동안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안다는 것은 단기적으로 비가역적이기 때문이다. 모르는 상태에서는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알고 나서는 모르는 상태를 체험할 수 없다. 영화 내내 궁금했던 탓에 더 몰입해서 볼 수 있었고 관람 후에 역사적 배경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일말의 반전도 느낄 수 있었다. 
영화를 보기 전이고, 60년대 할리우드에서 발생한 사건을 모른다면 조승연 작가님의 배경설명 영상을 먼저 보고 영화를 관람한다면 훨씬 잘 이해할 수 있겠다. [아이리시맨]과 시대적 배경이 약간 겹친다. 때문에 두 영화에서 나오는 멋진 클래식카들, 그 시절 미국 백인들의 복식, 광고판, 야경들이 아주 선명히 기억에 남는다. 과연 황금기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브래드 피트의 연기가 보는 즐거움을 한층 더해주었다. 감독은 두 배우와 그 배역에도 애정을 듬뿍 쏟았다. 특히 한물 간 배우와 스턴트맨 역할로 왕년의 꽃미남 시절을 뒤로한 두 배우를 캐스팅하다니, 현실과 대체현실이 묘하게 (그러나 유쾌한 시선으로) 겹친다. 영화의 마지막은 열려있다. 끔찍한 살인사건에 통쾌히 응징했으니 해피엔딩일까 싶지만, 결국은 옛날 옛적에.. 로 끝이 난다. 하지만 왠지 잘 나갈 것 같은 느낌이다. 두 배우의 실제 행보처럼.

오늘의 책: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SNS에서 재독화가 노은님 님의 인터뷰를 보고 궁금해서 알아낸 책. 평균 연령 72세(그게 2018년)인 다양한 분야의 어른들에게 그들의 인생과 삶에 대해 묻고 정리한 인터뷰집이다. 꼰대 아닌 어른들은 다 어디에 있는 걸까 싶으면 이 책을 읽으면 된다. 이 분들이 직접 쓴 책이나 글을 읽어도 되겠지만 이렇게 그들의 인생에 대해서, 그들이 해주고 싶은 조언을 단박에 읽어내기란 어려울 것이다. 오전나절을 내내 책에 빠졌다. 형광펜으로 표시해 놓은 부분이 너무 많아서 글귀를 뽑을 수가 없다. '급하게 하지 마라', '덕을 많이 쌓으면 운이 따라온다' 등 오래 사셨으면서도 세월을 허투루 쓰지 않으신 분들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위안과 기쁨이 될 것같다. 특히 노은님 선생님, 이순재 선생님, 노라노 선생님,, 아니 계속 생각나는데 아무튼 곁에 두고두고 읽고 싶은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