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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생활일기 2020

다시 블로그에 글을 쓰게 된 경위

by EHhyun 2020. 3. 8.

2019년, 애틀랜타

 

2020년 3월 8일 일요일

아침밥을 먹으면서 다음에 읽을 책을 고르고 있었다. 어제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를 다 읽어서 자연스럽게 발터 벤야민을 찾았다. (한국어로 된 종이책을 살 수가 없기 때문에 태블릿으로 yes24 북클럽과 교보ebook을 이용하고 있다. 전자책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주재생활을 보람차게 보낼 수 있었을까 싶다.) yes24에서 발터 벤야민의 글을 엮은 [발터 벤야민, 사진에 대하여] 라는 책을 발견했다. 바로 다운받아서 차근히 읽었다. 

현대미술과 사진에 대한 철학 책들을 읽으면 나의 무지함에 아득하다. 사진을 취미로 하면서 겪는 상황들과 사진들, 그에대한 생각을 이토록 깊게 해놓은 사람들이 이미 수십년 전에 글을 써 놓았다. 그 글, 그 맥락을 이해하기엔 미학, 철학에 대한 나의 배경 지식이 너무 짧다. 누가누가 등장해서 무슨무슨 일을 했는데... 하면 나는 그 사람과 그 일을 찾아보려고 한다. 이번의 주인공은 존 하트필드와 그의 포토몽타주였다. 그래서 네이버에 검색해 보았다. (그 전까지 나는 집단지성 나무위키를 많이 이용했다. 다른 이유보다도 재밌어서.)

한 블로거가 존 하트필드와 발터 벤야민에 대해서 잘 정리해주셨다. [1900년 이후의 미술사]라는 방대한 책을 가지고 한 카테고리를 빼곡히 채워가셨다. 해당하는 책 뿐만 아니라 언급된 작가들의 다른 책, 수전 손택과 같은 다른 작가들의 책을 적절히 인용하면서 자기 생각을 써 내려가시는 것이 읽는 맛이 있었다. 감명과 감사로 댓글을 남기려고 티스토리에 로그인했다. 예의 이메일 인증, 그리고 비밀번호 변경 요청이 들어왔다. 가뿐히 다음으로 미루고 티스토리의 먼지덮힌 뚜껑을 열었다.

점심 즈음 호텔방 하우스키핑을 부탁했다. 기다리는 동안 간결하게 쇼핑을 하고 1층 카페테리아에서 방 청소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은유 님의 [쓰기의 말들]을 며칠 동안 읽고 있다. 일본에서 교환학생을 위로해 준 책이었는데 타지생활 2회차 자카르타에서도 도움을 받고 있다. 빨리 읽으면 아까워서 천천히 나눠서 읽게 되는 책이다. [쓰기의 말들]을 읽다 보면 글감이 마구 생각난다. 자꾸 책을 읽다 말고 메모를 하게 된다. 이 주제로 글을 써보면 재미있겠다. 이것도 꼭 써서 남겨야지. 이 호텔 직원들에 대해서 써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청소가 끝나서 올라갔고, 나는 노트를 펼쳐 몇 줄 써보았다.

정리되지 않은 문장들이 흘러나왔다. 당혹스럽지만 고치고 싶은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어차피 나만 보니까.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계속 써야 하지만, 올바르게 써야한다는 책의 문장이 따끔했다. 나는 남이 보지 않으면 대충할 것이다. 그것이 지난 27년간 나를 관찰해 온 나의 진단이다. 그리고 결심했다. 오늘 오전에 열었던 티스토리를 다시 시작해보기로.

요즘은 자꾸 쓰고싶다. 글감이 많다. 인풋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유튜브로, 책으로 계속 정보가 들어온다. 이걸 잘 소화 해서 나의 정신을 성장시키고 싶다. 올해 읽은 10권의 책 중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건 [그리스인 조르바] 였다. "물질을 정신으로 바꾸는 놀라운 힘은 신적인 힘이다" 조르바는 당신이 먹은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면 당신이 누군지 알려주겠다고 말한다. 내게 들어오는 멋진 생각들을 가지고 무엇을 하는지가 곧 나를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