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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생활일기 2020

주재생활일기 03. 나의 집 다르마왕사 101

by EHhyun 2020. 3. 11.

2019년, 자카르타

2019년 10월 11일, 아 아니다. 2019년 6월 말 어느 때 즈음 이 호텔에 처음 묵었다. 첫 해외 출장을 나왔을 때, 자카르타 숙소가 이곳이었다. 우리 법인은 자카르타 출장자들을 대부분 이곳에 묵게 했고, 나도 그에 따라 몇 박을 지내게 되었다. 그 때의 기억은 생생하지 않다. 무더운 칼리만탄과 자카르타, 단지 지나가는 인연인 줄로 알았을 뿐이다. 

계절이 바뀌는 10월 즈음 다시 다르마왕사 101 호텔방에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열심히도 인니어 인사말을 외웠다. 장기출장을 당했기 때문이다. 다르마왕사 장기 투숙객으로 지낸 지 세 달 정도. 식당과 로비 직원들이 내 이름을 알고 인사해 주는 것이 신기했다. 경제적 여건 때문에 아파트로 옮기는 날, 이상하게도 나는 또다시 집을 떠나는 것 같았다. 내 집은, 내 고향은 서울시 마포구인데.. 태어나서 처음 만난 장소를 고향이라고 부른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느껴졌다. 인도네시아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호텔 다르마왕사는 마치 고향이었다.

두 달 정도 아파트에 살다가 에어비앤비 연장이 안되어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마치 먼 여행에서 돌아온 기분이었다. 바보같이, 나는 지금도 여행중인데, 아니 출장중인데. 수 많은 매체와 글귀를 지나치다 보면 자꾸 되새기게 되는 문장이 있다. 여행은 인생이고 인생은 여행이다. 이순재 선생님께서 여행을 연기로 바꾸어 말씀하셨던 것을 어느 인터뷰에서 보고 내 나름대로 여행으로 치환했다. 당시의 나는 여행이 인생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지금 미루어 생각해 봐도 인생은 여행이다. 출장으로 온 타지에서 우연히 오래 묶게 된 호텔이 있다. 그곳을 잠시 떠나 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것도 마치 여행처럼 느꼈다. 자카르타에서 서울로 돌아가 내 방 침대에 누울 때 쯤. 참 좋으 여행이었어,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정말 긴긴 여행을 마치고 어딘가에서 와 정말 멋진 여행이었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오늘은 술을 꽤 먹고 돌아왔다. 정신은 있어서 글도 쓴다. 반갑게 인사해주는 로비 직원을 지나쳐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제 층을 찍은 줄 알고 내렸더니 1층 식당이었다. 바보같이 당황한 표정을 지어도 '좋은 밤입니다 미스터 킴' 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자꾸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