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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생활일기 2020

주재생활일기 06. 떠나는 날, 돌아가는 날.

by EHhyun 2020. 4. 2.

팔랑카라야, 2019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은 날도 언젠간 온다. 6개월 동안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로션을 세 통, 치약을 두 통 썼다. 손톱을 몇 번 깎았더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먹은 나시고랭 끼니 수도 헤아리기 힘들다. 칼리만탄에는 여덟 번 갔고 발리에는 한 번, 족자카르타는 두 번, 반둥과 말랑, 메단에도 한 번 다녀왔다. 내 앞에는 배워야 할 것들, 배우고 싶은 것들이 수 없이 많았고 그 첫 단계는 물론 인도네시아어였다. 인도네시아어가 정말 배우기 쉽고, 인도네시아어 화자들이 그만큼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언어 습득자에게 큰 축복이었다. 

6개월이라는 시간은 사실 짧다. 한 사람의 인생을 100센티 자로 두면 겨우 0.5센티 길이로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참 깊은 시간이었다. 아 참 나는 다시 돌아온다. 전 세계인을 괴롭히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나의 출장 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체류증, 거주증이 없는 외국인들 대상으로 입국을 금지했다. 나는 키타스(체류증)을 발급 받고 있는 중이었지만 모든 이민국 업무는 잠정 중단되었으므로 나의 키타스 발급도 기약이 없어졌다. 한마디로 지금 나가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는 말이다. 

회사 안에서는 내가 체류하는 것이 맞는가 돌아오는 것이 맞는가가 작은 이슈가 되었다. 다행히도 돌아오는 편에 서 주신 분들의 덕에 내가 더 싸우지않고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마냥 즐거운 마음으로 들어갈수는 없다. 내가 돌아오지 못하는 국경을 넘으면 나의 공백이 있음을 아시는 분들조차 나를 지지해주었다. 마음이 무겁다. 

인도네시아에서 6개월동안 얻은 것을 생각해보면 단지 업무적인 것만 배운 것이 아니었다. 가장 큰 성장은 나의 태도에 있었다. 계속 배우고, 계발하는 태도. 독서를 통해, 유튜브를 통해 알고 싶은 것들을 주체적으로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나에게 충분히 주어졌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직을 했지만,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는 왜 그렇게 못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실력은 계단을 오르듯 오른다고 한다. 한 단계의 성장을 나는 이곳 인도네시아에 와서야 이룰 수 있었다. 

이곳에서 배운 것들, 경험한 소중한 것들을 의미없는 일로만 넘기지 않기 위해서는 가져가야 한다. 글도 계속 쓸 것이고, 계속 읽을 것이다. 인도네시아 법인 업무도 모두 털고 온 것이 아니다. 잠시 맡기고 온 것이다. 그래서 나의 잠시간의 작별이 아주 슬프지만은 않다. 나를 지지해준, 기다려준, 응원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한없이 감사하다. 인도네시아에 감사하다.

내일이면 한국에 돌아가는 날이지만, 왠지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으로 다시 떠나는 느낌이다.